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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8 | 218 | 이번 작전으로 특공대원 3명이 부상을 입었고, MIA 대원 1명은 부상자 이송 중 연기 흡입으로 병원에 후송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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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9 | 219 | 그러나 이들의 빠르고 단호한 대응 덕분에 더 큰 유혈 사태는 방지될 수 있었고, 이는 이후 헌정 질서 회복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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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1 | 이후 무장 폭도들의 난입과 경찰 특공대의 신속한 진압이 이루어진 지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국회의사당 내에 있었던 사회민주당 및 일부 중도 성향 무소속 의원들은 긴급하게 본회의장에 재집결하였다. 폭력 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의원들은 신속하게 대통령 테디 해밀턴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를 결의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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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3 | 오전 12시 58분, 사회민주당 원내대표 엘리엇 스콧은 본회의석에 서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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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4 | > “우리는 방금, 루이나 민주주의의 숨통을 조이려는 시도를 눈앞에서 목격했습니다.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명령하지 않았을지언정, 이 모든 사태의 도화선은 그의 야욕과, 침묵, 그리고 방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루이나 공화국의 이름으로, 제9대 대통령 테디 해밀턴에 대한 탄핵소추를 이 자리에서 정식 발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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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6 |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직후, 국회의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민주공화당 역시 당론 없이 전원 자유투표를 선언하며 초당적 찬성 입장을 밝혔다. 당 대표 마르셀 다비드(Marcel David)는 오후 1시 12분경 기자회견을 자청해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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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8 | > “루이나 헌정사에 오늘처럼 어두운 날은 없었습니다. 총성과 피, 연기 속에서 의회가 침탈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우리 모두는 정당 이전에 국민의 대의기관임을 절감했습니다. 민주공화당은 오늘의 사태에 대해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하며, 본 탄핵소추안에 당론 없는 자유 표결로 참여하겠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저 역시 찬성표를 던질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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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0 | 이는 해밀턴 대통령이 소속된 보수 연합 내 주요 정당인 민주공화당조차 사실상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린 첫 공식 신호였으며, 실제로 이후 진행된 탄핵 표결에서 민주공화당 의원 47명 중 38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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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2 | 이러한 초당적 연합은 사회민주당이 중심이 된 탄핵 소추안이 단순한 정파적 대응이 아닌, 헌정 질서 수호를 위한 국가적 결단이라는 인식을 국회 전체에 공유시켰고, 국민 여론 또한 이에 폭넓은 지지를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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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4 | 이 시점부터 테디 해밀턴 정권은 사실상 정치적 생명력을 상실했으며, 루이나 역사상 가장 강력한 헌법적 제동장치가 발동된 순간으로 기록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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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6 | 탄핵소추안은 대통령이 다음 사태를 수습하거나 항변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현장의 분노와 충격 위에 세워진 헌법적 반응이었다. 이로써 헌정위기 초기의 중심에서 가장 중대한 정치 절차가 가동되었으며, 루이나 정치사에 있어 가장 격동적인 48시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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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0 | 239 | === 3월 30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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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2 | 241 | == 영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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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4 | 243 | == 각국 반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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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6 | 245 | == 여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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